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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일보 배철한 기자 |
| ⓒ N군위신문 |
예산은 행정이 세우지만, 그 혜택은 주민이 누려야 한다. 그래서 주민참여예산제는 흔히 지방자치의 꽃이라 불린다. 아무리 많은 예산이 편성되더라도 주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적은 예산이라도 주민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인다면 그 효과는 몇 배로 커진다. 결국 예산의 성패는 규모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담아냈느냐에 달려 있다.
군위군의 주민참여예산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업이 예산 편성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직접 느끼는 불편과 요구가 정책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주민이 제안하고, 주민이 토론하며, 주민이 선택한 사업이 실제 예산으로 반영되는 구조가 점차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마을 안길의 안전시설 설치, 노후된 생활환경 개선, 주민 편의시설 확충, 아이들과 어르신을 위한 생활밀착형 사업 등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거창한 개발사업보다 주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일이 지역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군위군의 주민참여예산제가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예산의 투명성이다. 주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공개적인 심의와 토론을 거쳐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은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예산이 어떤 기준으로 편성되고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주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지방행정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는 행정이 결정하면 주민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주민이 예산의 출발점이자 결정 과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예산은 세금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주민이 예산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바로 그 당연한 원칙을 제도화한 장치다. 주민들은 자신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갖게 되고, 행정은 주민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더 많은 설명과 소통에 나선다.
행정과 주민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예산은 더욱 효율적으로 쓰이고 정책의 신뢰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업의 실효성도 크게 높아졌다. 행정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활 속 불편은 주민들의 눈에는 가장 먼저 보인다. 어느 골목길이 위험한지, 어느 배수로가 막혀 있는지, 어느 마을에 쉼터가 필요한지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가장 잘 안다. 이러한 생활밀착형 제안들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면서 주민 만족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주민이 가장 필요한 곳을 가장 잘 안다’는 평범한 진리가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참여예산제가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사업 몇 건이 늘어난 데 있지 않다.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점이 더 큰 의미다. 참여를 통해 주민들은 지역의 현실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며 공동의 해답을 찾아간다. 이는 성숙한 지방자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부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주민참여예산제가 낯선 제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참여하는 주민들이 특정 계층이나 단체에 편중되는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보다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 청년과 여성, 농업인과 소상공인 등 폭넓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는 노력도 함께 뒤따라야 한다. 참여의 폭이 넓어질수록 예산의 균형도 높아지고 정책의 완성도 역시 한층 높아질 것이다.
행정 역시 주민들의 제안을 단순히 접수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안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실현 가능한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과 행정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지 일회성 공모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소통과 피드백이 뒷받침될 때 제도는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지역의 경쟁력은 결국 주민의 참여에서 시작된다.
행정 혼자서는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주민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할 때 정책은 현실성을 얻고 지속가능성을 갖게 된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단순한 예산 편성 방식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민주주의의 실천이자 지방자치의 핵심 가치다.
군위군의 주민참여예산제는 이제 행정 절차를 넘어 주민과 행정이 함께 지역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소통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예산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주민의 삶을 바꾸고 마을의 미래를 만드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행정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주민이 제안하고, 주민이 선택하며, 주민이 완성하는 예산이야말로 진정한 지방자치의 모습이다.
군위가 보여주는 변화는 주민참여예산제의 본래 취지를 가장 잘 증명하고 있다. 주민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고, 정책이 다시 주민의 삶을 바꾸는 선순환이 이어질 때 군위의 내일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주민이 짠 예산이 군위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구일보 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