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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민국학연구원 학술조사단과 김광순 원장이 문헌연구를 통해 밝혀낸 군위군 의흥 조림산 신남촌에 있는 엄흥도의 묘. 위의 것이 엄흥도의 묘이며 아래는 가묘다. |
ⓒ 군위신문 | |
군위군 의흥면 조림산 신남촌에 있는 충의공 엄흥도 묘가 진짜 임이 입증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했던 충의공 엄흥도의 묘소가 군위에 있음이 확인됐다.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경북대 명예교수·사진)은 지난 10일 울산, 청주, 문경, 안동 등 전국의 영월 엄씨 세거지를 답사하고 탐문 조사한 결과, 엄흥도의 묘가 현재 영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위군 의흥에 있음을 밝혀냈다.
김 원장은 학술조사단, 보건대 강영숙 연구원간사, 배계용 상임연구원 등과 함께 국학연구론총 제3집에 발표한 논문 ‘충의공 엄흥도(忠毅公 嚴興道)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 단종의 시신을 염습한 엄흥도의 도피생활과 그의 묘소 진위에 대해 이같이 규명했다.
김 원장은 “엄흥도가 은거하여 생을 마치고 묻힌 묘소가 있다고 제시된 곳은 영월과 청주, 경상도 의흥 세 곳 중의 하나로 알려져 왔는데 충의공실기와 영월엄씨파보(寧越嚴氏波譜) 등의 기록을 근거로 엄흥도의 묘소가 의흥에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의흥의 광순문(光舜門)이 수대에 걸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의흥 조림산(鳥林山) 신남촌(身南村)에 있는 엄흥도의 묘소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엄흥도가 은거한 곳이 의흥이고 화본리의 묘소가 진묘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김 원장은 “단종 시신을 수습할 때 엄흥도를 은밀하게 도운 아들 엄광순(嚴光舜)의 묘와 엄흥도의 묘가 의흥 신남촌 산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하고 있어 부자간의 은둔했던 삶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택민국학연구원 학술조사단은 이번 엄흥도 묘소의 진위 확인과 더불어 의흥의 영월엄씨 22세손 엄철업(嚴哲業) 등이 장(狀)을 올려 영조 9년(1733) 엄씨 종손에게 군역과 복호(復戶·세금)를 면제하는 완문(完文)이 내려졌음도 이번에 밝혀냈다. 이 완문은 의흥 종손이 약 300년 전부터 내용도 모르고 보관해 온 것으로, 학술조사단 김광순 원장은 의흥 광순문이 엄흥도의 자손임을 조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귀중한 문서임을 밝혀냈다.
조선조 6대 임금 단종은 세조 3년(1457) 6월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같은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서인(庶人)으로 강봉, 10월에 죽음을 당하였다. 엄흥도는 단종이 죽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치된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자신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에 묻고 영월에서 살 수 없어서 영남으로 몸을 피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