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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령사 성역화추진 회의 |
ⓒ 군위신문 | |
△군위 孝靈祠(효령사) 성역화 추진.
군위 孝靈祠 성역화 추진위원회(회장 이원영, 군위군노인회장) 지난 5일 군위읍 군위노인회관 회의실에서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효령사 활성화 작업에 들어갔다.
효령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하여 김유신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장군리에서 주둔한 곳으로 고려 말엽 이곳 주민들이 추모를 위해 건립했다.
이곳 장군당(효령사의 첫 이름)은 고려 말 효령에 정착한 司空仲常(사공중상)공의 상소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군당을 건립한 시기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에 위치한 효령사(제동서원)에서 김유신·이무·소정방 3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단오절에 대제를 봉행한다.
현재는 김해김씨 및 연안이씨 문중에서 운영하고 있다.
孝靈祠 성역화 추진위원회는 활성화 방안으로 현재 金·李 2 문중이 운영하던 것을 蘇氏도 찾아 金, 李, 蘇 3 문중이 주도하고, 군위군 내는 물론 대구, 인근 타성도 참여를 유도한다.
또 享祀(향사) 뿐만 아니라 장군행렬, 씨름대회, 노래, 백일장, 특색 있는 음식(술, 떡) 등 다른 행사도 개발해 축제로 실시할 계획이다.
△효령사(장군당) 란.
임금님이나 귀한 분이 오셨던 곳이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는 효령면 장군리의 효령상에 있는 사당이다.
1300년 전 신라 무열왕 때 당나라 소정방은 수륙군 10만을 거느리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신라는 김유신 장군이 정병 5만을 이끌고 백제 도읍지인 사비성을 공격하기 위해 경주, 영천, 신령을 거쳐 이곳에 와서 진을 치고 하루를 유숙했다.
이곳에 온 군사들의 위세가 당당하였다고 하는데 군위(軍威)라는 명칭도 이와 관련이 있을 거라 전해지고 있다. 이후 고려 말엽 이곳 주민들이 옛일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을 지어 당시 나당연합군의 장수였던 김유신, 소정방, 이무 3장군 위패를 모시고 매년 단옷날 제사를 지내며 사당이름을 장군당이라 지어 불렀는데 이때부터 동네 이름도 장군동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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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위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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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소열(정방)·이무 장군 등 3사람의 위패.
현재 효령사 제단에는 세 사람의 神將(신장)을 적은 위패가 있다. 그들은 신라장수 김유신, 당나라장수 소열, 그리고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이무 장군이다.
김유신 장군(595년∼673년) 신라 화랑출신의 장군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이다. 629년 8월 고구려 전투에 참가한 이래 반평생을 전쟁에 참여한 戰神(전신)이다.
소열(정방) 장군(592년∼667년) 660년 7월 백제가 항복하자 9월3일 의자왕과 귀족 88명, 그리고 1만2천명의 포로와 함께 당나라로 돌아갔다.
이무장군(?∼?생몰연도는 알수 없음) 당나라 宗室(종실) 사람이다. 唐書(당서)에는 당고조(이연:李淵)의 아들인 서강왕 李元禮(이원례)의 맏아들인 淮南王(회남왕)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 후손 중의 어떤 사람은 同名異人(동명이인) 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의 출발, 군위삼국통일대문(軍威三國統一大門) 건립.
삼국통일은 실질적으로 효령 장군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통삼한의 중심에 장군봉이 있고 그 정상에 장군당이 있기 때문이다.
7세기 중엽, 장군봉에서는 諸王(제왕)들의 만남이 있었다.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의 아들 문무왕 김법민, 당나라의 회남왕 이무, 그리고 가야의 흥무왕 김유신이 그들이다.
1881년 이곳 군위현감이 쓴 효령사 중수상량문에는 ‘百濟統合 三韓一匡(백제통합 삼한일광)’이라는 글이 들어있다.
이 글은 “백제를 통합하는 것이 곧 삼한을 바로잡는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130년 전 이곳을 맡고 있던 관리의 통일의식이다.
군위 땅에서 출발한 일통삼한의 정신이 있었기에 삼국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孝靈祠 성역화 추진위원회 이원영 고문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 이러한 일통 정신을 군위 군민들이 훌륭하게 지켜간다는 뜻에서 군위삼국통일대문(軍威三國統一大門)을 효령 장군리에 건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군위군, 효령사 종합 정비 계획.
군위군은 두 차례에 걸쳐 장군당(효령사)에 대해 연구 조사가 했다.
1988년 10월 ‘학술 조사보고서 장군당’, 2003년 5월 ‘효령사 종합정비계획’등이다.
1차 보고서에는 장군당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로 당제의 행사 내용에 대해 소중한 연구결과이며, 2차 보고서에는 효령사(산 속의 장군당을 마을로 끌어내려 이름을 효령사로 바꾸었다)를 관광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타당성과 투자성을 분석한 연구서이다.
효령사 연구로 다른 도시와 차별화 할 수 있는 독특한 향토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군위는 ‘삼국유사’와 ‘삼국통일’을 함께 누리는 역사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또 민족의 통일을 처음 시작한 발상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풍요로운 전원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효령화 성역화 추진위원회 구성.
▷고문 이원영(군위군 노인회장) ▷연안이씨문중 추진위원(6명)이시화, 이문화, 이동영, 이범영, 이화식, 이현옥. ▷김해김씨문중 추진위원(6명) 김명규, 김영화, 김재규, 김종형, 김홍준, 김두호 ▷효령사공씨문중 추진위원(5명) 사공 희, 사공화열, 사공 록, 사공 명, 사공 직 ▷연구 및 자문위원(3명) 이윤화 안동대교수(문학박사), 이형우 영남대 교수(문학박사), 김완수 영남이공대학 명예교수(공학박사).
△찾아오시는 길.
5번국도 대구출발 →칠곡 →군위군효령면→ 장군동→ 왼쪽 효령사입구표지(장군교회간판과 같이있음) → 50m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