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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산과 들이며 바다며 우리 집 안방까지도 고요하게 들려온다. 봄이 왔나보다 하고 창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봄이 되려면 이른 듯하다. 먼 산에는 아직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있고 바람은 겨울바람 못지않다. 나무들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다. 나뭇가지며 풀잎들은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 바람에 흔들리는 듯 하느작거린다.
봄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숨죽여 있던 모든 생명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꿈틀댄다. 시냇가에 힘없이 늘어진 버들 나뭇가지 눈에는 연둣빛 물을 한 모금 머금고 터질 듯하다. 흰나비 노랑나비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한데 뒤엉켜 엎치락뒤치락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풀은 무거운 흙을 헤집고 올라온다. 산골 버들강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싹을 내밀며 토실토실한 솜옷으로 갈아입는다. 하나하나의 생명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준 봄의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스러움에 경탄한다.
봄이 오는 소리에 잠 못 이룬다. 땅속에 갇혀 있던 온갖 생명이 동시에 땅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봄을 기다리다 지친 성급한 녀석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밖에 일찍 뛰어나와 봄 햇살을 즐기며 마음껏 뛰논다. 양지바른 묘 앞에 핀 할미꽃 수줍은 듯 오가는 행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밭둑에 고개를 내민 파릇파릇한 쑥은 아낙네의 마음을 끌어당기며 쉼 없이 자란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는 개구리 될 날 기다리며 꼬리 흔들며 유영하고 있다. 담벼락 밑에 핀 앙증맞게 핀 꽃, 나비들을 불러 모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속삭이는 소리에 잠 못 이루었다.
향긋한 봄 냄새를 맡으며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고 뒷동산에 올라갔다.
상큼한 봄 향기가 코를 벌렁거리게 하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 듯 시원하게 해 주었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긴 나무들은 살았구나 하며 후유~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뭇가지에 얼어붙었던 얼음 송이가 녹으면서 바싹 마른 낙엽 위에 뚝뚝 떨어졌다.
맑고 청아한 소리에 놀란 개구리가 뛰쳐나왔다. 앞다리를 세우고 뒷다리를 땅에 대고서 앉아있다.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래턱에서 숨을 쉬는지 울룩불룩 반복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눈과 마주치자 불안한 듯 뒷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얼른 자리를 피해 버렸다.
대부분의 짐승들은 봄이면 새끼를 낳는다. 어느 날 어미 소가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소는 덩치만 컸지 산통(産痛)은 작은 짐승과 같은 것 같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음~ 음~하며 소리를 계속 질러댄다. 그때마다 긴장과 불안감이 엄습해오며 피가 마르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간다. 누구도 거들어 줄 수 없고 스스로 견뎌내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고통에서 벋어나기를 바랐다.
이윽고 성질머리 급한 녀석이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멋모르게 알몸으로 바깥세상에 뛰어나온다. 으스스한 찬바람에 깜짝 놀란 녀석이 ‘음매’ 하고 소리친다. 울음소리가 지나가고 난 뒤 갑자기 고요하고 쓸쓸한 적막감이 흐른다.
어미 소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본다. 조그마한 한 생명이 옆에서 숨을 헐떡이며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는 듯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자연은 변함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봄이 오면 봄맞이 대청소하느라 부산하였다.
겨우내 오물과 흙이 쌓인 도랑을 깨끗이 청소하고 길거리도 깨끗이 했다. 이른 봄 못자리 만들기 위해 봇도랑에 쌓인 흙도 말끔히 쳐주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봄이야 오든 말든 외면해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봄 응보의 대가를 주듯 111년 만에 그것도 춘분(春分)에 13.3㎝ 폭설을 쏟아부었다.
이제 봄이 가져다준 희망과 용기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
삭막한 세상에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봄이면 꽃구경하려 산과 들로 나가려고 채비를 한다니 어처구니없다. 봄의 신비를 만끽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개탄하며 지난날 어리석었던 일에 참회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