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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시인 |
ⓒ N군위신문 |
봄도 기울어져가는 잎새달이다. 눈부신 계절, 눈물어린 꽃잎이 후두둑 떨어져 자꾸만 발밑으로 내려앉는다. 일찍 지고 스러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벚꽃이
활짝 핀 게 어제인가 싶은데, 몇 차례 봄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어느 새 봄은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다.
꽃이 진 자리에 새싹이 돋아 새싹에 자리를 내어 주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꽃들의 자태가 자못 의연하다.
올해 꽃이라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다운 것도, 더 달라진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은 싱숭생숭 몸이 들썩인다. 봄꽃이 피고 지는 이즈음 여지없이 부는 것이 봄바람이다.
이때 하릴없이 마음만 들떠 어쩌면 봄바람이라도 날 것 같은 싱그러운 계절이다. 설사 그런들 어떠하랴 찬란한 봄을 아낌없이 누려야 봄인 걸. 이렇게 바람이 불고 마음이 들뜬 오늘, 봄비가 또 내린다. 부픈 대지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지는 것도 봄비다.
봄이 깊어지면서 내리는 봄비인지, 봄이 가면서 눈물처럼 뿌리는 봄비인지 새벽녘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비를 보면 시리고 앙상했던 마음이 포근한 사랑비에 스르르 녹아 지난날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반면에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화사한 꽃은 꽃이 아니라 차라리 가시 같기 때문에 봄과 꽃을 한없이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중국 당나라 때 여류시인 설도의 “춘망사(春望詞)" 한시(漢詩)를 읽어 보면
나감화만지(那堪花滿枝) 아! 어찌하랴 흐드러지게 핀 꽃가지
번작양상사(飜作兩相思) 도리어 그리움만 돋우어 놓으니,
옥잠수조경(玉潛垂朝鏡) 아침에 거울 보며 흘리는 내 마음을,
춘풍지부지(春風知不知) 봄바람아 넌 아느냐, 모르느냐.
봄꽃처럼 봄은 눈 깜박할 찰라 인데 어찌해 천 이백 년이 지난 설도의 가슴 속 사념은 천년을 내려 와도 이리도 사무친 듯 애절할까.
한때는 분홍이고 연두였던 꽃피는 시절 지나고 보니 빛나든 때가 그립고 가슴을 더 애잔하게 만듦을 알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라. 아무려나 봄꽃도 한철이요, 꽃이 시들면 오던 나비도 아니 온다지 않던가.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으니 봄은 금세 가고 꽃도 쉬 진다. 시인 소동파가 “봄밤은 한 시각을 천금 값”이라고 했듯 우리들은 짧은 봄날을 소중히 여기고 고맙게 누릴 일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을 들을수록 깊은 맛이 감칠 나게 우러난다. 오죽 했으면 몇 해 전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원내 회의 도중 긴급 발언을 신청하고는 뜬금없이 “봄날은 간다.”를 부른 해프닝을 벌렸겠나. 사람들은 짧은 봄날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 가슴을 두드릴 성 싶다.
이 따끈한 봄볕 한 줄기 외에 우리 생애 더 바랄게 있을까 싶다. 정원 숲 속에 납작 엎드린 고양이 입술에도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다니지 않던가.
봄날은 간다. 언제나 그랬듯 올봄도 그예 간다.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같은 꽃철이라 더 그럴까. 연분홍으로 지는 꽃은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꽃이 지며 가는 봄의 애수는 깊어 갈 뿐이다. 무심한 봄은 가되, 내년에는 눈부신 꽃 봄으로 돌아 왔으면 한다.
인생도 돌아보면 별것 있겠나. 때로는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때론 악몽처럼 모든 것 다 지나간다. 짧은 봄날, 이별은 슬프지만 세월이 가는 걸 어떻게 막으랴. 속수무책이다.
황성창 부산연제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