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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꼴찌가 첫째 되다

admin 기자 입력 2018.05.01 15:50 수정 2018.05.01 03:5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춘설이라 하기출발과 시작은 늦었지만,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너에게 축하한다.
할아버지 만나려 애쓰며 찾아온 너이기에 더욱 축하한다. 고민하며 묵묵히 기다려온 너의 어머니에게도 축하한다.

지나간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불그스름한 해를 날름 집어삼킨 꿈이었다. 어쩌다 꾼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밑도 끝도 없이 기억이 흐릿했지만, 간밤에 꾸었던 꿈은 너무 생생했다.

예사로운 꿈 아닌 것 같아 신기루처럼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듯 했다.

꿈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꿈이라 하기엔 너무나 선명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듯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기에 학수고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기적은 거들도 보지 않았다. 선명했던 꿈도 두렵고 무서웠던 생각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허전하고 씁쓸했던 마음도 꽉 막혔던 것이 뻥 뚫린 것처럼 홀가분했다.

어느 날 난데없던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마다 한 번씩 아들한테서 전화가 오곤 했다. 오늘따라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아들이겠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부모는 자식의 말소리만 들어도 건강과 생각과 기분이 어떤지를 금방 알아낸다. 우쭐대는 듯한 목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혹여 좋은 소식이라도 올까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한결 편했다.

섣달 그믐날 오후였다. 아들한테서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걱정되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집사람이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습니다 한다. 그리고 난 이후로는 전화가 없었다. 병원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산모도 아이도 모두 건강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선뜻 들었다. 좋은 소식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킨다. 자정을 넘기겠구나 하고 마음 놓고 기다렸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긴장된 순간은 피를 말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 밤은 쥐죽은 듯 조용하며 가로등만 오가는 사람 하나둘 헤아리며 우두커니 서 있다. 적막감이 흐르는 고요 속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들한테서 온 전화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바라시던 그 녀석입니다.” 하고 흥분을 가라앉지 못한 목소리였다. “축하한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 산모와 아기 건강은 어땠나? 걱정된다.” 아버지의 마음은 여렸다. 무뚝뚝한 넷 마디가 전부였다.

보고 싶던 그 녀석이 발가벗은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기쁨과 즐거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양팔을 뒷짐하고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며 얻은 기쁨도 잠시였다. 뜻하지 않던 걱정거리가 생겨 좌불안석이었다. 우산 장사하는 아들과 짚신 장사하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과 같았다.

부모는 좋아도 그만 슬퍼도 그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모든 것 가슴에 쓸어안고 지내야만 했다. 어쩌면 부모는 땅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식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 부모가 할 도리일까 하고 고민해 보았다.

말 타면 종 앞세우고 싶다는 말 있듯이 사람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었다. 삼신할머니가 그 녀석을 점지해 주신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이 2011년 신묘년(辛卯年) 마지막 달 마지막 일 밤 10시 1분에 태어났다.

두 시간만 늦게 났어도 한 살 덜 먹을 걸 하며 삼신할머니한테 투덜거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가 멋쩍은 듯 마지못해 위안을 주셨다. 2011년 신묘년은 합천 해인사에 봉인된 고려대장경이 간행된 지가 1,0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1,000년이란 숫자를 가진 해에 태어나게 했다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었다.

신이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세 대대 부귀영화 누리며 잘 살 것이라 믿으며 섭섭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남의 밥에 든 콩이 더 굵어 보였다. 그 녀석도 작지만 다른 애들과 같이 세워 보니 더욱 작아 보였다. 형뻘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슬며시 걱정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같아지겠지 하며 불안한 마음을 추슬렀다.

출발과 시작은 늦었지만,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빙상 경기에서 보듯 맨 나중에 달리던 선수가 골인 지점을 맨 먼저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일찍 출발한 것이 중요한 것 아니었다.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이른 아침 엄마 손 붙잡고 학교 가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할아버지는 마음이 든든했단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재목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너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대구가축병원 원방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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