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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억만 회장 |
ⓒ N군위신문 |
군위군 출신으로 경북체육의 산증인인 최억만 회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경북체육회 상임부회장을 사임했다. 이에 경북체육회는 최 前 상임부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키로 했다.
최억만 前 상임부회장(84·경동화물자동차㈜ 대표이사)은 지난 2016년부터 숙환으로 인해 사실상 체육회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팔순이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청년 같은 열정과 건강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최억만 전 상임부회장은 지난 30여 년간 경북 체육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경북 체육의 산증인이다.
최 전 상임부회장은 재력을 갖춘 경제인 임원에 머물지 않고 체육 현장 곳곳을 누비며 선수단을 격려하는 등 ‘체육사랑’을 실천해, 많은 체육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 경북체육을 빛내
그는 지난 1984년 이사로 체육회에 몸담은 후 1989년부터 부회장, 1997년부터 올해 5월까지 상임부회장을 역임했다. 고령의 나이를 빌어 2016년에는 체육회 상임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으나 김관용 도체육회 회장(경북도지사)의 완곡한 부탁으로 상임부회장에 연임되어 도체육회를 이끌었다.
평소 김관용 경북체육회장은 최억만 전 상임 부회장을 지칭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꼭 적합한 인물”이라며 “어느 조직이나 단체든 어른이 있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른이 대접받아야 사회가 안정된다. 최 부회장이 나이를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더 모시고 싶다”며 최억만 회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내비쳤다.
김 회장의 이런 강한 신뢰는 최억만 전 상임부회장이 체육회의 살림을 책임지면서부터 경북체육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억만 전 상임부회장은 경북 체육의 전력을 전국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주역이기도 하다. 그의 열정을 바탕으로 경북은 전국체전에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2~5위를 유지했다.
2005년 울산 체전(제86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고, 2006년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2006년 김천 체전(제87회)에서는 시·도 분리 후 역대 최고 성적인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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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95회 전국체전에서도 종합 4위에 오르며 변함없는 체육강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최억만 전 상임부회장은 “경북이 전국체전 11년 연속 상위권 달성이라는 성적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시·도 단체와의 격차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12년 연속 상위권 달성을 이루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최선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럭비 선수로 활동했던 최 전 부회장은 ‘운동선수들은 사기를 먹고 산다’는 신조로 기꺼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 그는 팔순의 나이에도 집 대신 경북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는 전국의 캠프에서 도체육회 직원, 임원들과 함께 묵으며 경북의 경기 상황을 손수 챙기고 있다.
고령의 나이를 잊은 듯한 그의 열정에 후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최 전 상임부회장은 “피곤하다 해도 우리 도선수단에 보탬이 된다면 좀 더 움직일 수 있다”면서 “경북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경북도 체육계가 힘이 될 수 있도록 다들 조금씩만 더 투지를 발휘하자고 격려하고 다닌다. 도민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스포츠는 온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 또 체력을 단련하고 올곧은 정신을 함양하는 것은 스포츠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스포츠에 매료되어 최억만 상임부회장은 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아오면서 체육현장 곳곳을 발로 뛰면서 경북체육을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상승시켜왔다.
일부 프로팀을 비롯, 시·도·군청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팀이 한국스포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지자체가 보유한 팀들은 주로 아마추어 종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국 936개 팀(2013년 말 기준)이 운영되고 있다. 선수만 남녀 약 7000명이다.
지자체팀은 매년 1회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운영된다. 사실상 지자체 팀이 없으면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는 없다고 할 정도다.
이에 대해서 최억만 전 상임부회장은 “지자체장들은 스포츠의 육성 및 발전보다는 자신의 업적에만 신경 쓰다 보니 지자체들의 경쟁 대회인 전국체전 성적에만 급급해 한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은 가차 없이 정리되기도 한다. 전국체전 성적을 위해 메달 딸 능력만 갖추면 연봉 1억 원이 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경쟁’도 불사한다. 기록보다는 성적으로만 평가를 받다보니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국제용보다는 ‘전국체전용’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최 전 상임부회장은 “한국 스포츠는 기업과 정부가 빠지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기형적인 구조다. 이런 비정상의 합리적인 정상화 방법은 결국 구조조정밖에 없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는 “팀을 없애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그동안 관행적으로 불필요하게 쓴 돈과 인적 자원에 대해 합리적으로 칼을 대 효율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투명성과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기업 구단과 지자체 팀에 더 큰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한국스포츠는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상임부회장은 프로야구 넥센의 자생력을 갖추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한국 프로스포츠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면서 “이제 기업 구단이나 지자체 팀도 승리에만 급급하지 말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은 이런 자생력 확보 노력의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의 역할은 실로 대단했다.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 일제 식민 치하에선 민족적 울분을 표출하고 독립의지를 한데 모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고, 해방 후에도 고단한 삶에 지친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어디 그 뿐이랴. 한국이 세계를 향해 이름을 알린 것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서였다.
스포츠는 이제 한국의 희망이다. 문화의 시대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 한국이 세계를 향해 잠재력을 맘껏 뽐낼 수 있는 드넓은 평원이 바로 스포츠의 영역이기에 그렇다.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스포츠강국으로 도약한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런 기적을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 고통을 받아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한국체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체육후배들이 나아갈 이정표가 되었다.
■ 민간 안보 파수꾼 ‘자유’ 수호 앞장
한국자유총연맹 경북지부의 2~7대(1992. 1. 1 ~ 2009. 12. 31)회장을 역임한 최억만 회장은 순찰활동, 학생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통일 안보교육 실시 등 자유로 하나 된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지역 내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지난 2008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의미 있는 상을 수상했다?
최억만 회장은 서울 자유총연맹 본부에서 열린 연맹 창설기념일에 ‘세계자유주의연맹 봉사상(훈장)’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자유주의연맹이 특별 공적을 갖춘 사람에 한정해 2·3년에 1명 정도 수여하는 귀한 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 회장은 1992년부터 당시 제2대 경북지회장을 맡아 재정적 지원을 비롯해 자유민주주의 홍보·교육 등 지회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경북연맹은 최 회장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에 힘입어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사무국과 교육장, 전쟁 체험시설 등을 마련, 체계적인 교육과 홍보 활동을 펼쳤다.
도내 고교 2년생들을 대상으로 자유민주 시민교육을 실시(2천332개교, 46만2천명)했으며 통일 촉진 자유민주 시민교육(170회 2만2천200명), 북한실상 소개(64회 3천950명), 기념관 방문 교육(1천800회 19만5천명), 책자발간(24종 4만9천부) 등의 활동도 펼쳤다.
특히 최 회장은 국방부의 도움을 이끌어내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비행기, 탱크, 대포 등을 전시해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최억만 회장은 같은 해에 ‘경북대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했다. 최 회장은 2008년도 경북대 총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지역 경제 발전과 후진양성, 대구세계육상경기대회 유치 등 지역 사회 공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 경북대 총동창회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했다.
그는 앞서 2000년에도 ‘제1회 경대 경영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대 경영자상은 경북대 경상대학 및 경영대학원을 나온 지역 기업인 가운데 기업윤리와 산업평화, 경영혁신, 기업 창업 및 발전 등의 업적을 쌓은 인물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이어 최억만 회장은 2010년 6월8일 인천에서 열린 세계자유총연맹 연차총회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최억만 회장은 지난 1984년 자유총연맹 운영위원으로 출발하여 1992년 경북지회장을 맡아 26년 3개월동안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봉사한 공적을 높이 평가받아 수훈의 영광을 얻게 됐다.
이외에도 그는 경북도 문화상, 제4회 TBC 자랑스러운 대경인상, 군위군민상 등을 수상했다. 최억만 회장은 경북도의 체육발전, 특히 꿈나무육성 등 지역체육중흥과 국가체육발전에도 크게 힘쓰는 한편 봉사와 지역사회 문화 창달에도 깊은 관심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숨은 일꾼이다.
<‘군위군민상’에 빛나는 고향사랑>
최억만 회장은 평소 남다른 애향심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향을 가꾸어왔다. 최 회장은 지난 1999년부터 2017년 8월까지 명예 부계면장직을 맡으며 부계면과 군위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이러한 공로로 자랑스런 군위군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고향의 인재육성과 체육발전 및 저변확대에 큰 도움을 보탰으며, 군위신문보내기 운동에 앞장서면서 출향인과 군위군민들의 애향심 고취에도 큰 역할을 해오는 등 틈만 나면 고향을 찾아 다듬고 가꾸는 출향인으로서 많은 출향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고향 가꾸기에 작은 힘이나마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소박한 포부를 밝히는 최억만 회장의 만면에 애향심이 물씬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