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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우리 밥 한끼 먹읍시다

admin 기자 입력 2022.08.31 22:26 수정 2022.08.31 10:26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자, 어서 앉아라 밥 먹자!’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밥’을 먹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사나흘 굶으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나.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흉년이 거듭 들고 굶는 사람이 많아지자 심지어 인육(시체)까지 먹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이후에도 일제 수탈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육칠십을 넘긴 사람들은 보릿고개 넘기랴 끼니 굶기를 부잣집 밥 먹듯이 했다.

이런 못쓸 가난에 부모들은 자식들 안 굶기고 밥을 먹이는 일에 온갖 고난을 겪었다.
어머니 입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말은 ‘밥’이다. 밥은 보약이고 목숨이다. 어려웠던 시절엔 무엇을 먹는지보다 삼시 세끼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식사하셨습니까?’ ‘밥은 먹었니?’가 되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나오는 ‘밥’이라는 인사말을 하루에 도대체 몇 번이니 하면서 평생을 지나고 왔을까.

사람들은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가족들 삼시 세끼 밥 먹이려고 20년 전만해도 새벽부터 분주하게 일터로 나갔다. 뮈라해도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밥 먹는 일이다.

밥을 함께 먹는 가족을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 식솔(食率)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힘들게 농사 짓는 걸 생각해서 그런지 곡식을 거둬들일 때는 이삭 하나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그러면서도 우리 어머니는 “내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밥 한 숟가락도 나눠 먹는 게 사람된 도리”라는 밥상머리 교육도 잊지 않으셨다.

교육이라고해서 딱히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안의 가풍이나 소소한 예절 등을 집안 욕 듣지 않을 정도로 가르쳐 주셨다.

어디 가든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어서도 안되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하게 밥을 먹고 지저분하게 밥알 한 톨도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수백년 이어온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잘 살아보세’라고 제창한 조국 근대화사업, ‘새마을운동’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50년이란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 대한민국은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의 반열에도 올랐다. 우리는 오랜 세월 먹는 것에 한이 많은 나라의 국민이다.

이제는 가난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보다 다이어트 때문에 끼니를 거른다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반백년에 세상은 온통 상전백해로 변했다.

가끔씩 떨어져 사는 손주들에게 전화를 걸어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물으면 ‘할아버지 학원가느라 바빠서 학원 옆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햄버거 등으로 떼웁니다’고 말한다.

손주들로부터 공부하느라 빨리빨리를 외치고 여유없이 서두르고 있는 느낌을 받으니 괜스레 짠한 생각이 가슴 속으로 스르르 스며든다.

‘밥 먹었냐?’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인사로 사용하는 나라인 만큼 대한민국은 많이 먹는 국가가 된 것 같다. 언젠가 발표한 어느 연간통계표를 봤더니 우리 국민 해산물 소비량은 58kg으로 세계 1위였고, 육류 소비량은 51,5kg으로 아시아 1위였다.

전 세계 골뱅이 생산량의 90%를 우리나라에서 소비하고 있다. 채소와 과일도 많이 먹는다. 채소 섭취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2위를 찾이했다.

반면에 과거에 우리가 주식으로 먹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들어 쌀을 위주로 생산하는 고향 친구들이 타격이 클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튼 우리가 즐겨 찾고 먹던 토종 농산물이 부족하면, 해외에서 수입해서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부자 나라가 되었으니 꿈만같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내새워 하는 말이 있다. 누굴 혼낼 때 “너 오늘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저 친구 보면 찐자 밥맛 없어”. 나쁜 짓 하면 “너 그러다 콩밥 먹는다”. 좀 우둔하고 멍청하면 “야, 이 밥통아!”. 상대가 고마울 땐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한다.

사업에 성공한 친구든, 조직에서 승진한 지인을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땐 흔히 ‘밥 한그릇 사야지요’라며 축하의 말을 건넨다.

그렇게 해서 밥을 사든 얻어 먹든 부담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한끼의 밥을 먹는 것이 우리들 나름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져 끼니를 때운다는 그 이상으로 인연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밥을 먹으면서 쌓였던 회포도 풀고, 서로의 정보도 공유하며 삶의 지혜를 나누기도 한다. 한끼의 밥상에서 정이 들고 관계가 좋이진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이렇듯 넘쳐나는 풍요 속에서 우리들 삶의 현장에는 아직도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는 불행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속담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느 사회나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기는 마련이라는 자조적인 말이다.

실타래처럼 엮인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불운이나 무능력, 게으름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진 않으나 대부분은 저소득, 실직에서 오는 무기력, 난치 질병의 고리를 끊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배기를 마련해주지 못한 사회적 책임은 더 막중하다.

근래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송파 세모녀의 불행한 사건이나 수원 세모녀 사건 같은 안타까운 소식은 세상을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어 연민의 정에 가슴 속이 아린다.

이런 우울한 소식을 접할 때 조선의 3대 부자로 알려진 경주 최부잣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떠오르 게 한다.

가훈6조(家訓六條)에 “지나가는 나그네(過客)를 후하게 대접하라”라는 문구가 눈길을 잡는다. 최부잣집 연간 쌀 수확량이 대략 3천 석인데, 천석은 집안 일용 양식으로 쓰고, 천석은 “길손들이 결식(缺食)하지 않도록 밥이라도 후하게 대접하라”는 당부다. 나머지 천석은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는데 썼다고 한다.

특히 최부잣집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 없게 하라”는 지엄(至嚴)한 가훈은 버티기 힘든 가난에서 세상을 떠나는 현 사태에 시사하는 의미가 깊다.

개인뿐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이 솔선하여 어려워하는 국민들 보살핌에 틈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곧 다가올 추석에는 우리 모두가 이웃끼리 훈훈한 마음의 밥이라도 한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성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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