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사자성어 논쟁, 짜증나는 정치 행태

admin 기자 입력 2022.09.19 22:46 수정 2022.09.19 10:46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2030세대 정친인들에게 기대가 컸다. 청년 정치가 성공하고 더 많은 청년이 정치에 뛰어들어야 할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그런 단초를 지난 대선에서 이대남·이대녀가 ‘캐스팅 보터’가 된 것은 청년들의 미래는 청년들의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제공했다.

이에 부응하려면 청년 정치인들이 폄훼했던 그 꼰대 정치인들이 연연히 답습했던 구닥다리 방식의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다면 시대를 대변하겠다는 젊은 정치 기수들이 개혁을 이끌려는 의지는 있었던가? 3개월 전만 해도 30대 여당 대표 이준석과 20대 야당 비대위장 박지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기대했던 대선판을 흔든 반짝 공약이나 메시지의 신선함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럼 그간에 청년 정치인들에 무슨 돌발 변수라도 생겼던가?

최근 이준석 전 대표의 언행을 살펴보면 차세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젊은 당대표로 선출될 때 꼰대와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든 말과 다르게 구태를 답습하고 있어 몹시 안타깝다.

남보다 센 척하는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세속의 표현대로 쓰자면 ‘제 잘난 맛’에 폼만 잔뜩 잡고 있다. 독불장군처럼 휘젓거리는 걸 보노라면 그것이 얼마나 허황스런 형상인지. 사람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나.

인간을 너절하게 망가지는 것 중에 으뜸이 교만인데, 하버드대 샌들 교수는 “능력주의는 패자에겐 내 탓이라는 좌절감을, 승자에게는 ‘내가 잘나서’라고 하는 오만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스피노자도 “자만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데서 생기는 쾌락”이라고 말했다. 새겨둬야 할 명언이 아닐까 싶다.

요즘 ‘국민의힘’ 당대표와 의원들 사이에 사자성어 논쟁으로 뜨겁다. 수개월 이어진 당 내분에서 각종 사자성어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가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고 윤 대통령을 조롱하 듯 비난하면, 비난 받는 측에서 ‘망월폐견(望月吠犬·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며 되받아 친다.
‘호가호위(狐假虎威·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린다)’고 조롱하면,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으로 입을 다무는 형국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힌다)’이라 시비 걸면,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웃는다)’며 ‘장군 받아라 멍군 받아라’는 좁쌀뱅이 같은 수작(酬酌)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도저히 동지라고 볼 수 없고, 당원들이라 믿기 어려운 물과 기름이다.

이준석 대표는 당을 향해선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은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까지 했다.
아직은 몸 담고 있는 당과 대통령을 빗댄 것으로 여겨질 내부 총질을 하는 것은 당대표 출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장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실속 없이 오히려 두고두고 발목 잡힐 막말로 남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이 대표 자신의 성 비위 의혹에서 불거졌다는 점에서 소멸시효 운운하기 전에 본인 책임이 더 크다.

그렇다면 젊은 당대표로써 차분하게 성찰하고 자중하는 태도를 보였으면 국민들이나 당원들에게 일정한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청년다운 솔직함도 없는 대표에 실망이 적잖다.

정치는 시작부터 끝까지 말의 성찬(盛饌)이다. 특히 정치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말에는 긍정적이고 친숙함이 묻어나야 한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정감을 표현했던 것처럼 그런 서정적 맥락이다. 때문에 말은 사건이나 현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정치인의 말은 비타협적 투쟁보다는 상대와의 협상 도구다.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거늘 말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그러지기도 한다.

공허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말은 사상의 표현이고 평소의 생각이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순 없지만 자칫 도끼로 변해 자신의 발등을 내려찍는다.
영국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말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보다 묵묵히 자기일에 충실한 입 무거운 사람을 칭찬하는 뜻이다.

법구경(法句經)에 ‘거친 말을 쓰지 말라, 그것은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온다.
성낸 말은 고통이다. 보복의 채찍이 너의 몸에 이를 것이다’고 경고 했다.

불교에서는 ‘입’에 관한 악업(惡業)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악구(惡口), 양설(兩舌), 기어(綺語), 망어(妄語)이다. 악구란 거친 말을, 양설이란 남을 헐뜯는 말, 남의 사이를 갈라놓는 말을 뜻한다.

기어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의미한 아첨이나 나쁜 농담이며, 망어란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말인 것이다.

님을 헐뜯지 않겠다고 마음 속에 맹세하는 것은 그처럼 남을 헐뜯는 말은 그만큼 유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에서 그쳐야지 지나치는 것은 억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메랑이 되어 훗날 자기 혐오의 감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준석 전 대표는 본인이 정치판에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주인공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겨냥하여 투사처럼 사즉생으로 싸우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은 누구나 더 높은 자리를 향해 과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준석 전 대표는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아주 이상야릇한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탄압 받는 정치인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다. 정치인의 대의(大義)는 나라를 살리는 일이며, 소의(小義)는 사리사욕에 눈 먼 소아병적 권력 투쟁으로만 비칠 뿐이다.
그의 눈에는 국민이 무섭질 않고 아무렇게나 보이는 모양이다. 자중 자애하길.

황성창 시인
(수필가)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