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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상속세제 개편안, ‘부자감세’ 아니다

admin 기자 입력 2022.10.17 23:21 수정 2022.10.17 11:21

↑↑ 박상근 대표
ⓒ N군위신문
한국의 상속세제는 23년 전인 1999년에 전면 개편된 이래 현재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고 있는데, ‘구시대적 유물’에 가까울 정도로 낡았다.

한국에서 기업이 상속될 때 부담하는 상속세는 황금알 낳는 기업이 도산할 정도로 높다.
2020년 10월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의 상속재산은 26조원, 상속세는 12조원이었다. 같은 조건의 상속에서 독일의 경우 상속세는 5조4,592억 원(45.5%), 영국의 경우 3조6,399억 원(30.3%)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삼성그룹 일가의 상속세 12조원 중 앞으로 4년간(2023~2026) 납부할 상속세 8조원을 계속 은행차입금과 배당금으로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상속세 납부 자금 마련을 위해 삼성일가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팔 경우 삼성일가의 경영 지배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과다한 상속세는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안정적 경 영권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우수한 인재와 기술, 경영 노하우를 보유한 유수기업이 ‘상속세’라는 암초를 만나 경영권이 사모펀드 기업 사냥꾼에 넘어간 사례가 적지 않다.

쓰리세븐(손톱깎이), 유니더스(피임기구), 락앤락(밀폐용기), 농우바이오(종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인이 평생 일군 가업을 폐업하거나 기업 사냥꾼의 먹이가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상속세제 개편안을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이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 및 매출액 4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 및 매출액 1조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확대된다.

가업상속공제 금액 한도도 피상속인의 사업영위기간에 따라 최대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두 배로 늘어난다.

정부는 가업상속 후 성장 발전에 걸림돌이었던 가업상속공제에 대한 사후관리기간도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상속 후 업종 변경도 중분류에서 대분류로 확대되고 상속 후 7년 통산 고용인원 및 총급여액 100% 유지 요건도 5년 통산 90% 유지로 완화된다.
자산유지 요건도 7년 이내 20%(5년 이내 10%) 이상 처분 제한에서 5년 이내 40% 이상 처분 제한으로 완화됐다.

중소기업 상속 시 재산비율에 관계없이 세금을 나눠 낼 수 있는 연부연납 기간이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된다.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으로서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않은 기업을 물려받은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양도하거나 상속, 증여할 때까지 상속세 납부를 뒤로 미뤄주는 상속세의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로의 전환도 도입된다.

현재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받을 때 100억원을 한도로 5억 원 공제 후 과세표준의 크기에 따라 10~ 20%의 증여세율을 적용한다.

이 제도는 1000억 원을 한도로 10억원 공제 후 10∼20%의 증여세율을 적용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올해 정부가 정기국회에 제출한 상속세제 개편안은 비정상적 세제의 최소한 정상화에 불과하다.

그런데 169석의 거대 야당은 정부의 상속세제 개편안에 상투적인 ‘부자감세’ 프레임을 덧 쉬워 반대하고 나섰다.

이제 더 이상 조세원칙과 세계 추세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속세제의 정상화가 야당의 부자감세 논리에 매몰되거나, 여야 정쟁의 ‘희생양’이 돼선 안 된다.

나아가 비정상적인 상속세제의 정상화가 부분 땜질에 그쳐서도 안 된다. 정부와 여야는 합심하여 다음의 비정상적인 상속세제도 점진적으로 정상화해야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살아난다.

첫째, 100년 장수기업으로 가는 길은, 가업승계에 최대 걸림돌인 상속세 최고세율(50%)을 경제협력개발가구(OECD) 평균 세율(26.3%) 수준으로 내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최대주주의 경영 프리미엄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다. 최대주주 주식평가 시 할증 20%(이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은 세계 최고인 60%가 됨)는 과대평가에 해당하므로 폐지하는 것이 맞다.

둘째,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이 30억 원 초과인데, 독일은 402억 원(26백만 유로) 초과, 일본은 40억 원(3억 엔) 초과분부터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현행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은 23년 전인 1999년에 정해진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게 낮아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부동산가격 상승과 경제성장, 물가 상승 등을 종합 고려해 각 상속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 금액을 현실에 맞게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

셋째, 상속세 과세방식을 ‘유산취득세 과세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소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현행 유산세 과세방식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전체를 하나의 과세대상으로 높은 세율이 적용되므로 상속인이 실제 상속받은 재산에 해당하는 세율이 적용되는 유산취득세 과세방식보다 상속세 부담이 크다. 유산취득세 과세방식이 조세원칙인 ‘실질과세원칙’과 ‘공평과세원칙’에 부합한다.

넷째, 한국은 상당기간 토지, 주택가격이 급등한데다 공시가격 현실화로 수도권에 30평형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중산서민층도 수천만 원의 상속·증여세를 내야할 판이다.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과세표준이 높아졌으면 상속세 면제기준인 일괄공제(배우자: 5억 원, 자녀: 5억 원)와 기초 공제를 비롯한 상속공제도 그동안 부동산가격과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해 현실화하는 것이 조세의 기본원칙에 부합한다.

그런데 한국은 1997년에 정한 상속세 면제기준 10억 원이 25년째 그대로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상속세 면제 기준과 상속공제 한도액을 조정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업상속 시 최대 걸림돌인 과도한 상속세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업상속 시 미실현이득(상속재산 평가액)에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고 상속재산을 처분해 이득이 실현되는 시점에 상속인에게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없거나,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국가가 절반에 가까운 17개 국가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국가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박상근(세무회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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