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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일보 배철한 기자 |
| ⓒ N군위신문 |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옛 성현들이 그냥 해 본 소리로 흘러 들었다. 죽고 난 뒤에 때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신체부모수지발부’라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60평생을 살면서 몸을 함부로 굴리고 학대한 죄 어떻게 씻어낼까, 업드려 사죄하고, 통곡해도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잔소리도 들을 수 없다.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리움에 몸서리쳐진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평소 써보지 못한 단어를 이제야 써 봅니다. 아버지의 바른 말씀을 헛귀로 듣고 제 맘대로 몸뚱이를 굴리다 병들어 죽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을 보며 말없이 감싸 안으시며 눈물 흘리시던 당신의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의 로망 이였고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 아버지! 몸서리치게 보고 싶습니다.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꿈속에서라도 말입니다.
가끔씩 전화로 “야들아 너희들은 잘 있나? 아들도 잘 크제”하시던 말씀이 부모로써 당연히 묻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당신이 자식, 손주들이 보고 싶고 외롭다는 언어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저 가끔 전화 드리고, 용돈 몇 푼 드리면 효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왔다가라는 말씀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고 오히려 짜증을 부렸습니다.
이제야 그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불초소생 용서하시고, 부처님 가피를 받으시어 극락왕생 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사람은 모두가 때늦은 후회를 한다지만 필자처럼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글을 써 본다.
얼마 후면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먼 길마다 않고 찻길이 막히는데도 선물꾸러미 양손에 들고 자식들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몰려올 것이다.
부모님들은 모처럼 보는 자식들과 오래 있고 싶고, 손주들 재롱도 좀 더 오래 보고 싶을 텐데 요즘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야들아 이번에는 연휴가 긴데, 언제 갈 끼고”, “아이고 어무이 늦게 가면 차도 막히고 처가도 가야되고, 출근도 해야 돼서 낼 바로 갈끼구마”이 소리에 부모들은 말은 안 해도 실망이 가득하다.
왠만하면 좀 더 있어 주는게 효도가 아닐까 싶다. 잠시 잠깐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을 뭐 그리 어렵다고 줄행랑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모른다 지나봐야 안다. 그 때는 벌써 늦는 걸, 효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로 표현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별것 아닌 넉두리 들어주고, 손주들 모습 자주 보여 주고, 안부 전화 자주 하고,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효도를 하고 싶어도 부모님들이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후회는 앞서지 않는 것, 때늦은 후회는 하지 안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추석은 부모님과 시간을 오래하며 잡다한 이야기들을 들어 주면 어떨까 싶다.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대구일보 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