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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구월이 되면

admin 기자 입력 2018.09.16 20:52 수정 2018.09.16 08:5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반갑지 않은 추석이 다가온다.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바빠진다.
벌초하고 조상에게 차례와 성묘를 지내고 이웃도 찾아가 본다.

봄에 뿌린 씨앗들이 탐스러운 열매를 맺으며 가을 향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에 조용하든 집이 북새통을 일으키며 온통 난리를 치른다.

추석이 마냥 좋고 기다려지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세월을 이기는 장수가 없다 하듯이 건강이 따르지 않아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뙤약볕 아래에서 벌초한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이면 벌들의 활동력이 매우 왕성하다. 벌떼 공격을 막기 위해 모자 장갑 장화 약품 등을 챙기고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

옛날 그때처럼 산림이 우거지고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와 칡과 억새가 한 테 뒤엉켜 길을 덮고 있었다. 인기척 없는 사방이 조용한 첩첩산중 혼자 올라가기가 허전했다. 적막한 산중에 어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가냘픈 새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에 기대어 위안을 받고 싶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 길로 다녔기에 토끼 길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괜스레 교통수단을 원망하며 입을 삐쭉거렸다. 보이지 않은 길 따라 더듬으며 올라간다.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밀어닥쳤다.

산천은 벌초하러 온 사람들로 온통 하얗게 물들여 놓은 듯하다. 빽빽이 들어선 울창한 소나무 중에 늘씬하고 쫄 곧은 것들은 도시로 다 빠져나가고 볼품없고 꾸부러진 것만 고향에 남아있다.

내 꼴이 그 짝이다.
그래서 아직도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초기 걸머지고 산기슭에서 산소까지 엉킨 칡이며 억새를 베어가면서 올라간다.

산등성이에 있는 산소에 도착하면 한나절이 훨씬 넘는다. 힘이 다 빠져 맥이 풀린다. 숨이 차 쌕쌕거리며 온몸이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벌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한다는 것은 내 생명의 뿌리에 대한 보은(報恩)이며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로 듣기 싫다. 벌초하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하다.

벌초를 끝내고 뒤를 돌아본다. 세상에 이보다 마음이 더 후련한 적 없었다.
잡초로 뒤덮여 지저분하든 묘가 한결 말끔하고, 단정하게 보인다. 우울했던 마음도 금세 사라지고 기분도 상쾌하다.

정성이 깃들어 있는 마음가짐은 곧 가풍이 살아있고 뿌리가 있고 후손이 살아 있다는 증거임을 말하리라.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낯선 묘를 보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가보았다. 묘역이 넓고 시원해 보였다. 잔디를 짧게 깎고 잘린 잔디는 빗자루로 쓸어내듯 했다. 잘 사는 집 묘 같았다. 묘는 능처럼 크고 2m가량 높은 커다란 비석이 위엄을 부리는 듯 서 있었다.

비석 뒤편에는 한자로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쓴 글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옛날 선비 묘 같은데 이상하게도 비석 위에 갓이 없었다. *“조선 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비신(碑身) 위에 개석(蓋石) 가담석(加擔石:비석 위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얹은 돌)을 얹을 수 있었다. 지금은 호화분묘에 저축되지 않은 범위 내에는 얹을 수 있다고 했다” 조상이 벼슬을 하지 못해서일까 그러면 지금은 벼슬을 하지 못해서도 가담석을 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얹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기 때문에 이 집 후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살펴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후손들이 번창하고 융성한 집안 묘는 묘역이 넓고 묘도 크고 석물도 잘 다듬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우아하고 포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러한 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버릇이 있다. 차를 멈추고 묘역을 둘러보곤 했다.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싶어서였다.

장승처럼 멍하니 묘를 바라보면서 후손들이 잘 받쳐진 가문이라고 생각했다. 꼭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삶이 풍요롭고 넉넉한 집안은 대체로 예를 갖추고 조상을 잘 받들어 섬기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아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나이 많은 노인들 사이에는 매장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매장해야 한다. 수장해야 한다. 수목장해야 한다고 하며 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왜일까? 농경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바뀌면서 전통사회가 붕괴하였다. 생활 구조와 방식이 달라졌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일인 가족으로 변하면서 개인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핵가족 아니 일인 가족 힘으로 묘지를 장만하고, 벌초하고, 성묘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따라서 조상에 대한 예와 효심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

부모는 매장문화에 대하여 줄곧 이야기한다. 부모가 자식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비명의 소리이다. 부모의 은혜는 갚을 길 없다고 했다. 옛날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살아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벌써 추석 열차 예매표 판매가 시작된다. 철도 항공 버스 선박 이동수단은 총출동한다.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국이 후끈거리며 뜨거운 열기가 더해가기 시작한다.

즐거워해야 할 추석이 노인들에게는 달갑지가 않다. 고추를 따며 깨를 털고 쭈글쭈글하게 생긴 누렇게 익은 호박을 따느라 분주히 보낸 추석 내년에는 반갑지 않은 추석이 즐겁고 반가운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출처 : 성균관 커뮤니티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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