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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춘수 원장 |
| ⓒ N군위신문 |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어머님 산소가 있다. 어머님이 애지중지하시며 매일같이 다니시던 밭이다.
어머님의 삼베 적삼에서 묻어나는 땀 냄새가 한결 더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올라가는 길이 힘들어 옛 충혼탑 자리 옆 가시덤불과 잡목을 걷어내고 넓적한 새길을 만들었다. 더 일찍 할 걸 올라가기가 쉽고 수월하다.
어머님은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하는 성품을 가졌다. 밭고랑을 맬 때도 언제나 앞장섰다. 나는 한 고랑 가지고 씨름하는데 어머님은 한꺼번에 두 고랑씩 맸다. 가끔 뒤를 돌아보시며 “뭐하노 어서 따라오질 않고 하며 깝쳤다.” 한번은 엉뚱한 짓을 했다.
밭고랑을 옳게 매지 않고 건성으로 얼렁뚱땅 맸다. 며칠 후 어머님이 맨 밭고랑은 멀쩡한데 내가 맨 밭고랑은 잡초가 무성했다. 난리가 났다. “일하기 싫거든 하지 마라. 농사를 망칠 셈 이가” 야단맞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도 참을 먹을 때면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죽거든 여기에 묻어 달라”고 하신 말씀 늘 잊지 않았다.
어머님은 경술년 동짓달 열여드렛날 아버지를 홀로 남겨 두시고 쓸쓸히 떠나셨다. 태어나서 한번 죽음은 당연하지만, 아직 돌아가실 때 아니었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상여를 떠나보낸 뒤 아버지는 어머님 없는 텅 빈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 눈물을 훔치며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눈물은 인간의 칠정(七情),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수정체이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한평생 같이 지내왔던 그 순간들을 못내 아쉬워하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생전에 하시든 말씀대로 밭에 모셨다. 기껏 칠순도 못 넘기고 살 걸 무얼 그토록 삶에 열정을 쏟아부었든지 삶이 서글퍼졌다. 하관이 시작되었다.
그새 관은 어머님 모시고 먼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하얀 땅 위에 봉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갑작스레 눈앞이 캄캄했다. 허전하고 텅 빈 세상 환멸을 느꼈다. 손발이 닳도록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남는 것이라곤 한 줌의 흙뿐이라니 삶의 허전함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자식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은 남달랐다. 오 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다. 언제나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런데도 돌아가실 때는 오 남매 앞에서 편안히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떠나셨다.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식들은 매일같이 석고대죄하며 용서를 빌고 있다.
어느 누가 태풍이란 말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1959년 9월 태풍 ‘사라’가 발생했다. 며칠째 장맛비가 그칠 줄 몰랐다. 천지가 개벽하듯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산사태가 나고 밭과 논두렁은 무너지고 들판은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마구간에 있던 송아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 위로 목만 내놓고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장독대가 물에 잠겨 장독이 마당 한가운데 이리저리 둥둥 떠다녔다. 떠내려가는 장독을 붙들고 허둥대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걱정했다. 산소 바로 뒤 언덕이 높고 가팔랐기 때문이다.
태풍 ‘매미’가 온다는 말에 불안하고 초조했다. 태풍 ‘사라’가 천지를 휩쓸고 지나간 지 사십여 년이 되던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발생했다.
밤새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한결같았다. 잠이 오질 않아 엎치락뒤치락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새벽같이 산소로 올라갔다.
묘봉을 덮고 있던 잔디는 비에 견디다 못해 흙이 다 씻겨 내려가고 하얀 뿌리만 앙상하게 드러냈다.
산소 좌우에 있는 작은 도랑에는 붉은 황토물이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뒤에서 무엇이 자꾸만 나타나는 것 같아 소름 끼치고 무서움이 엄습했다. 산소가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부모 잃은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하던데 나도 그렇게 될까 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미친년 널뛰듯 종잡을 수 없었다.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르고 며칠째 쏟아부었다.
시가지는 물난리로 난리를 쳤다. 붉은 황토물이 강둑 고개까지 찰랑거렸다.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가슴 조이며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랐다.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굵은 비를 쏟아부었다.
어머님은 살아생전 태풍 ‘사라’ 때문에 그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지하에 계시면서도 또 물난리를 만났다.
태풍과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었든지 하늘 궁둥이라도 찌르고 싶도록 미웠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긴장된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이마에 흐르는 빗물을 연신 닦아도 짙은 비안개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궁둥이를 찌를까 봐 겁이 났던지 가두어 두었던 물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었다. 빈 깡통이 된 하늘 놀라게 했던 내 마음을 조금이나 아는 듯 하얀 보슬비 내려주며 위안한다.
그런데도 결국, 터지고 말았다. 산소 옆 도랑에서 넘쳐흐르는 물이 순식간에 묘를 덮쳤다. 축의 일부를 싹 쓸어가 버렸다. 어찌할 바 몰라 쩔쩔맸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천연스럽게 맑은 하늘에 하얗게 핀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새로 단장한 산소(山所). 어머님의 삼베 적삼에서 묻어나는 땀 냄새가 한결 더 그리움을 느끼게 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