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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이런 수술

admin 기자 입력 2018.11.01 21:33 수정 2018.11.01 09:33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60년대 당시에는 소 한 마리가 전 재산이다. 소가 여물을 잘 먹지 않으면 집안이 어수선하고 난리굿을 치른다. 어머니는 소 앞에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머리를 조아리며 치성을 드린다. 아버지는 금방 베어온 풀에 콩이랑 보리등겨를 한데 버무려서 가마솥에 넣고 불을 지핀다. 성미 급한 아버지는 솥뚜껑이 들썩거리면 여물을 얼른 퍼 줘보라 한다.

어느 때는 소가 쩔뚝거리고 여물을 잘 먹지 않으면 소위 ‘소 침쟁이’를 불렀다. 소 침쟁이는 침을 놓고 난 뒤 소가 벌떡 일어나면 큰일 날 뻔했다 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상대접(上待接) 받고 목을 뻣뻣하게 해서 거만스러운 발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의사가 없었던 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해주는 듯했다. 젊음의 도전은 미래의 등불이라 했다. 미래의 축산발전을 위하여 비장한 각오로 대학에 진학했다. 불행히도 대학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실습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기껏 여름방학 때 교수님과 같이 일주일간 수의사 없는 마을에서 진료했던 것이 전부였다. 이 실력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에는 역부족함을 느꼈다.

가다가 막히면 돌아가는 진리를 가지고 끝없는 노력과 탐구를 계속해 왔다.
어느 여름 오후였다. 오십 리쯤 떨어진 곳에서 암소 엉덩이에 축구공만 한 것이 빠져나와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급히 달려가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자궁이 질 밖으로 빠져나온 ‘자궁 탈출’이었다. 소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희멀건 한 눈으로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선 이내 머리를 돌렸다. 모든 것이 귀찮아 한 걸음도 옮기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소중한 동물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수의사로서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한다. 최선을 다하여 살려내고 싶었다.

이런 수술은 처음이다. 소 건강상태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자궁은 언제 빠져나왔던지 오물투성이고 까칠까칠했다. 원상태로 돌리기는 불가능했다. 자궁절제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민 끝에 할아버지께 상의했다.

할아버지! “원 상태로 돌리기는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수술하다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각오하셨던 것처럼 쾌히 승낙하셨다. 곰곰이 생각했다. 세상사에서 헤어짐보다 더 고통스럽고 아픔은 없었다.

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기에 이야기도 채 끝나기 전에 흔쾌히 승낙하실까?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나면 서로가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지쳐 자연스레 정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까 생각했다.

불안했지만 젊음의 열정으로 도전했다. 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자궁을 따뜻한 물과 비누로 구석구석까지 말끔히 처리했다. 출혈을 막기 위해 밖으로 빠져나온 자궁 끝부분을 고무줄로 동여매었다.

죽은 조직이 뜯겨나간 자리에서 쉴 사이 없이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담담했던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입은 바짝 마르고 침도 넘어가지 않았다. 겨우 진정시키고 자궁을 조금씩 자르기 시작했다. 쉽게 자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궁을 잘라내었다. 가슴이 ‘찡’ 했다. 축구공만 한 것이 ‘툭’ 떨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숨 가쁘게 봉합을 서둘렀다. 매듭 하나하나 지을 때마다 흐르던 피가 조금씩 그치고 긴장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봉합을 마치고 깊은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허리를 폈다. 피곤했던 머리가 개운했다. 찝찝했던 소도 개운했던지 금세 활기를 되찾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기쁨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불안했던 순간들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땀이 뒤범벅되어 물귀신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수술이 잘 돼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하늘의 뜻에 맡겼다.

할아버지한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시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핼쑥한 얼굴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생했네! 젊은이가 없었더라면 그 소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난 소일세. 인제 나는 힘에 부대끼고 소와 정겹게 지냈던 정도 내 마음에서 떠난 지가 오래되었네. 소를 가지고 가서 날 보듯 키워주면 고맙겠네.” 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술할 때면 그때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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