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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까칠한 4월의 봄

admin 기자 입력 2026.06.05 17:34 수정 2026.06.05 05:34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4월의 봄은 아름답다. 늦겨울바람 타고 나풀나풀 날아온다. 겉은 포근하게 보이지만 속은 까칠하기로 유명하다. 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온 사방에 뿌려 놓고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일은 일도 아니다.

운에는 천운과 액운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 4윌은 액운의 달인가 싶다. 매년 크고 작은 일이 하나씩 터지고 있으니 말이다.

올 4월은 무사히 넘어 가는가 했다. 아니나 다를까, 3윌 31일 아침 응접실 화분을 옮기려다 허리가 삐꺽했다. 하늘이 두쪽 나는 줄 알았다. 숨이 턱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허리를 움켜잡고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우리 집사람도 허리 통증으로 몇 년째 고생하고 있다. 어쩔 수 없어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서성거리다 하루를 넘겼다.

이튿날 새벽 앰뷸런스 타고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수속을 마치고 응급실에 들어가 엑스레이 촬영 등 기본 검사를 마친 뒤 다섯명 입원 할 수 있는 입원실로 들어갔다.

내가 앰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아내가 아들 딸에게 전화했던 것같다. 자식들이 이른 아침 전화받고 영문도 모르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입원실에 들어선 자식들은 내가 허리에 차고 있는 허리 보호대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얼굴이 굳어진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야기 하는 동안 굳었던 얼굴이 차츰 풀리고 분위기가 좋아졌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간호사 한 분이 소변기를 가져다 주었다. 난생 처음으로 본 소변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다.

다 큰 자식 앞에 거시기를 꺼내 들고 소변기에 오줌을 눈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다. 죽기보다 싫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어쩔 줄 몰랐다. 사람을 완전히 망가트려 버렸다.

인고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한밤 중 오줌이 마려워 참다 못해 피곤함에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운다. 잠결에 벌떡 일어나 소변기를 들고 온다. 주위 환경의 불안으로 오줌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힘들어 억지로 누고 나서 아들에게 건네준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받아 소변기 비우려 지정된 장소에 비우고 돌아온다.

이렇게 몇 번 하고 나면 캄캄한 밤에 여명이 밝아온다. 다행스럽게 시간이 흘러 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 하게 되었다. 처음은 힘들고 어러웠지만, 자연적으로 면역이 생긴 것 같다. 생각이 무뎌지고 서먹했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가라앉았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이를 때 식구가 많은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꼈다.
큰 딸이 옆에 살고 있었다. 낮에는 딸이 돌봐 주고 밤에는 아들이 돌보고 했다. 하지만 딸도 자기 가족을 돌봐야 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집안은 복닥불 난다. 신랑 출근, 대학생 둘 학교 보내고, 자기 출근 등 뒷바라지에 정신없다.

틈을 내어 겨우 병원에 들린다.
부자지간이라도 건강해야 서로 도와 주는 것이다 라고했다. 나 하나 때문에 조용하던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세월이 약이다. 죽을 것만 같았던 숨 막히는 순간도 서서히 사라지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어느날 퇴원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딸이 담당의 한테 언제쯤 퇴원 합니까 물어본다. 금요일쯤 될 것 같습니다.

침울했던 입원실은 들뜬기분이었다. 일주일 지내는 동안 정이 든 환자 보호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등을 두드리며 다독여 준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함께 버텨 온 보호자들이 아니던가! 서로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 다웠다.

가지고 있는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빨리 쾌유하길 바란다면서 떠날 줄 모른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에도 훈훈한 인정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시끌한 세상 속에서도 한민족 특유의 끈끈한 정과 인정 넘치는 인간애를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내일이면 굴레를 벗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했다.

딸이 마흔 킬로그램 넘는 나를 번쩍 업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몇 주 지난 뒤 목욕을 씻겨 주러왔다. 도랑가에서 철없이 뛰놀던 어린애 같은 딸이 어느새 듬직한 어른이 되었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약한 여자의 몸으로 일을 가쁜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랑스럽고 곱게 자라준 것이 고마웠다. 애처롭고 대견함에 가슴이 울컥했다.
봄이 와도 봄 온 줄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벌써 8~9년 되었다.

그동안 봄은 내 몸에 붙어 있는 장기를 하나도 남김 없이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삶의 고통은 말 할 수 없이 비참했다. 허울은 멀쩡해도 속은 썩을대로 썩었다.

이젠 봄이 올까봐 두렵고 무섭다. 제 멋에 취해 까불어대는 봄은 신물이 날 정도로 싫다. 까칠한 봄은 더욱 싫다. 그럼에도 포근한 봄이 오면 봄다운 봄을 만끽하고 싶은 생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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