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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성창 시인 |
| ⓒ N군위신문 |
오늘은 제71회 현충일이다. 현충일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조기(弔旗)로 게양한다.
현충일을 맞아 필자가 사는 아파트 600여 가구 중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다섯 가구에 불과했다.
근래에 와선 아파트관리실조차 국가 기념일에 태극기를 게양해 달라는 안내 방송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현충일이면 골목마다 휘날리던 태극기를 애석하게도 좀처럼 보기가 힘들어졌다. 3·1절과 광복절 같은 국경일과 현충일, 국군의 날 등 국가 기념일은 공식적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더욱이 현충일인데도 조기를 내걸지 않으니 어디 될 말인가.
올해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76주년이 되었지만,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지금은 잠시 휴전일 뿐 끝나지 않았고 분단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게 살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서사의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 76년 전, 전쟁의 상처로 선혈이 낭자했던 고지에는 6월의 눈부신 신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름을 뽑내고, 초여름의 꽃향기는 포연이 안개처럼 자욱했던 그때의 포성마저 잊은 듯 우리들의 감성만 풀어헤쳐 놓고 있다.
6·25는 김일성이 마오쩌등과 스탈린의 허락과 지원을 얻어 북한이 불법으로 일으킨 남침 전쟁이다. 이에 대응해 유엔 깃발 아래 21개국의 젊은이들이 한반도로 모여들었다.
특히 미국은 연인원 178만9000명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들은 이역만리 한국에서 피를 흘렸다. 남한의 공산화를 막으랴 미국은 3만4000여 명의 전사자와 10여만 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많은 인명 피해를 보았다.
이처럼 미국이나 유엔의 젊은이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난생 들어보지도 못한 동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 최빈국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한민국도 북한처럼 자유가 없는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한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국에 아무런 영토적 이해관계나 반대급부 없이 대규모의 병력 파병으로 위기의 한국을 구해준 것은 대한민국으로썬 천운이요 큰 행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뿐인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많은 식량을 포함한 원조와 국토재건에 필요한 물자까지 아낌없이 도왔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에 와서 소중한 목숨까지 바쳤으니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영웅들이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한국은 어찌 되었을까. 5년째 러시아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6·25 상황은 상상도 안 되는 기적이다.
그런데도 선진국이 된 지금의 우리는 대가 없이 마시는 공기처럼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은 듯 고마움도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들처럼 마냥 희희낙락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스럽다.
그런데, 미국에 은혜의 빚은 갚진 못할망정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때 6·25가 남침이 아니라는 운동권의 궤변이 횡행했다. 6·25 남침 부정 궤변이 통하지 않게 되자 등장한 것이 중국 측이 항시 주장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중공군의 참전 정당화 이론을 펼쳤다.
이는 중국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며 6·25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전 용어다. 항미원조는 중국의 6·25 참전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뜻이다.
지금도 일부 좌파에선 이에 동의하는 듯 반미(反美)를 일삼고 있어 안타깝고 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건 아닌지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6월 들어 서울에서 전쟁기념관을 운영하는 전쟁기념사업회가 6·25전쟁에 대한 중국 측 시각을 담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논란이 일고 있다. ‘6·25는 북한의 불법 침략’이라는 한국의 역사관에 반해 중국이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는 항미원조를 대등하게 소개한 것이다.
그런 내용이 논란되자 관련 홍보물을 삭제하고 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항미원조는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했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6·25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처절한 희생을 당한 한국민을 다시 죽이는 모독이다.
특히 침략을 당해 100만명이 죽고 다친 전쟁인데 참전국인 국인들이 왜곡된 사실을 봤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일까.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의 소중한 친구이자 동맹국”이라 했다. 하지만, 미국 조야(朝野)나 싱크탱크들은 한국의 정치와 외교 기조를 ‘친중 좌파’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 브르스 클링너 전 선임연구위원은 작년 초 “한국에 새로운 진보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베이징과 평양에는 유화적이고 워싱턴에는 더 적대적일 테니 중국이 매우 환영할 것”이라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다.
6·25전쟁의 피비린내와 굶주림과 한숨으로 공산당에 치를 떨어도 모자랄 한국이 ‘친중 좌파’로 기울다니 어디 있을 수 있는 말인가. 공산화를 막은 혈맹으로 맺은 동맹국들과의 우의와 신의를 아무렇게나 배신해도 괜찮은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6·25전쟁은 한국 근현대사상 가장 큰 사건이다. 그로 인해 지난 시대의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도 더 날카롭게 남한과 북한을 과거로부터 단절시켰다. 이 엄청난 전쟁의 참상을 잊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도록 일러 줘야겠다.
암울한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준 희생세대들의 피와 땀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평가하고 상응한 예우도 갖춰야 한다.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휴전일 뿐이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당시 국군이나 미국 등 유엔군이 어떻게 싸워 이 땅을 지켜냈는지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6·25전쟁 76주년을 맞이하여 다시는 이 강토에 전쟁의 참화를 당하지 않고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 창작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통일 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유엔 참전 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회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뜻깊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되길 바란다.
황성창 시인/ 수필가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